구룡포 역사관
구룡포 유래와 전설
그러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다 이후,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 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며 용두산 아래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이 소(沼)메 안에 아홉 마리의 용이 동해로 승천하였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룡포 10개 마을
구룡포리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용암산의 한 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활처럼 휘어져
구룡포만을 이루는데 이를 끼고 기다랗게 놓여 있는 마을이다.
읍 소재지로서 관공서, 금융기관, 학교 등이
위치해 있다.
눌태리
구룡포리 서쪽, 병포리 북쪽의 긴 골짜기 속에 4개의 자연부락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는데, 옛날 이 곳에 불미질(‘풀무질’의
방언)을 하던 곳이 있었다.
1979년 눌태저수지가 건설되고 이 저수지는 현재 구룡포읍의 상수도 수원지이다.
구평리
동해면 중산리와의 경계에 있는 달구 벼슬산에서 발원되는 내를 따라 발달된 긴 골짜기와 동쪽 해안선에 ‘ㄱ’자로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옛날 성지(性智)라는 풍수가 이곳을 지나 뇌성산 줄기가 뻗어내린 이곳이 평평한 두들로 되어 있으므로
구평이라 했다 하는데, 거북의 등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구반이라고도 불려오고 있다.
효자 하영식(河永湜)의
효자각이 있다.
병포리
동해면 상정리에서 굴곡을 지나 구룡포읍으로 접어들면서 시작되는 좁고 긴 고디이골을 따라 뻗은 하천 하류에 우뚝 솟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구룡포만을 끼고 구룡포리와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하며, 북쪽의 호미곶방면으로 통하는
도로와 남쪽의 장기면방면으로 통하는 도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자래골, 웃자래골, 남포리등 3개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현재는 수산물 가공공장이 많이 입주해 있다.
삼정리
옛날에 삼정승이 살았던 곳, 혹은 지세가 좋아 삼정승이 날 것 같다고 “삼정리”라는 지명으로 불리었다 한다.
마을 앞 바다에 바위섬이 있는데 소나무가 울창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달 밝은 밤이면 신선이 놀았다고 하여 관풍대(觀風臺)라
불린다. 현재는 다리가 있어 통행이 자유롭다.
성동리
남쪽의 뇌성산과 북쪽의 광정산 사이의 긴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로 주변 경치가 수려하여, 1967년도에 발행한 「일월향지」中
“상성팔경(저자 오극상)” 이라는 시에서 아름다운 성동리의 경관미를 표현하였다.
1791년(정조 15년)에
황보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광남서원”이 위치해있다.
석병리
석병리의 지명은 마을을 끼고 있는 긴 해안선이 깍아 세운 듯한 암벽으로 되어 있어, 마치 병풍을 세워 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서 유래되었다.
마을 남동쪽 바닷가에는 병풍 모양을 하고, 끝이 뾰족한 아홉 골짜기라고 불리는
“병풍바위”가 있다.
우리나라 동쪽 땅끝 마을이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하정리
구룡포읍 소재지 남쪽 약 10리 되는 곳에 해안선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로 5개의 자연 부락이 1리(임물), 2리(하성,
태끼, 솔머리), 3리(당사포)로 구분되어 있다.
마을의 생긴 모양이 ㅣ쇠머리 형상이며, 그 머리 부분에
“일송정”이라는 소나무 정자가 있다.
이 일송정은 풍광이 아름다워 관광객의 기념 촬영지로 유명하다.
장길리
장구목, 생길리를 병합하여 장구목의 장(長)자와 생길리의 길(吉)자를 따서 “장길리”라 한다.
맑고 푸른빛의
수려한 바다 경관과 낚시를 비롯한 가족단위 해양 체험을 할 수 있다.
후동리
옛날부터 이 마을은 다른 어촌에 비하여 농토가 많은 편이라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넉넉하고 인심이 후한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구룡포와 포항 간의 국도 개설 전에는 이 마을 서쪽의 헛재를 넘어 포항으로 다녔는데 날이 저물거나 배가 고프면 이 동네에서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여 “후동리”라 하였다한다.
유명호
구룡포 삶의 풍경
70년대 어촌 가옥
지하수 펌프는 마중물을 넣고 힘차게 저으면 실제로 물이 콸콸 나오는데 관람객에게 체험공간으로도 인기가 있다.